성남 원도심 산동네의 골목길 콘크리트 밑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물소리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천川의 마을’_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성남의 도시화 과정에서 인구 증가와 도로 확보의 필요에 따라 차례로 복개되어 시야에서 사라진 생활 하천을 중심으로 도시 공간의 삶을 형성해 온 주민의 기억을 복원하고, 이를 지역의 역사, 자연, 환경을 아우르는 예술적 상상력과 과거-미래-현재(프로젝트 1-2-3부)를 교차하는 통합적 구성에 담아낸 기획이다.
도심 속 현실의 어려움 중에서도 ‘천 가지 다양성’으로 시민의 삶과 추억을 일궈 온 성남의 도시 역사를 배경으로 하여, 자연을 은폐하고 있는 복개천으로부터 다시금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도시 재개발 사업에 이르는 오늘의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회상연극, 디지털 아트-트윈의 가상현실, 사물(오브제)의 시간’을 따라 흐르는 예술적 맥락으로 풀어내어 시민의 현장에서 공유함으로써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삶의 가치를 돌아본다.
⬇ 유튜브 영상 아카이브_하천과 함께 흐르던 삶을 기억합니다|천川의 마을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부. 「기억수집과 회상연극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기억수집과 회상연극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남한산 자락으로부터 흘러나와 약수와 개울을 이루고 성남 원도심의 지형을 따라 탄천과 한강으로 이어지던 독정천·단대천·대원천 등 지금의 복개천 및 분당 일대의 지류 하천에 얽힌 시민의 지난 이야기를 수집하여 지역의 원형적 삶을 돌아보고, 시민 체험의 심리적 서사와 예술적 재현을 통한 회상연극으로 풀어내어 신·구도시를 아우르는 조화로운 상생의 담론을 생성해 가기 위한 시도이다.
이를 위해 성남의 자연 하천에 대한 생활의 기억과 도시 서민의 삶을 일궈 왔던 정착민 등 다양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인터뷰하여 구술로 기록했으며, 40년 이상 성남에 거주해 온 두 시민 배우의 삶을 집중 취재함으로써 회상연극의 기본 틀을 완성했다.
이후 한경훈 연출가(극단 성남93 대표)의 체험적 리뷰와 극적 조율을 거쳐 섬세한 대본으로 다듬었고, 세 명의 시민 배우와 성남을 고리로 활동해 온 다섯 명의 극단 성남93 배우들이 호흡을 맞췄다. 회상연극 속 주인공인 어린 박경화는 극 중 어머니 역을 맡아 연기했고, 현재의 오문자는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과거의 오문자와 조우함으로써 주체와 타자,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경험한다. 극의 토대가 된 주인공들은 거창한 서사에 어울릴 법한 기념비적 인물이 아닐지 모르지만, 거대 담론에 가려 보이지 않던 평범한 이웃의 목소리와 다른 시선, 공동체의 가치를 대변해 주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2부. 「꿈꾸는 마을 : ‘존재의 가상과 디지털 실상’」
마을과 도시, 나아가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지도는 이미지인 동시에 하나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실재에 바탕을 두고 있는 지도는 지형과 사물의 정보를 기호화함으로써 정밀한 풍경 사진처럼 지시 대상과 관찰자(사용자) 사이를 매개하며, 이때 지시어와 함께 기억 속에 저장된 지형과 사물의 정보는 개념화되어 현실과 동일시된다. 그런데 이 지상의 지도에서 사라진 자연, 현실의 정보와 개념 속에서조차 존재하지 않는 눈 아래 현실이 가상의 공간처럼 존재한다. 불과 30~40년 전까지만 해도 남한산 자락으로부터 마을을 굽이돌아 탄천과 만나고 한강에 합류하던 성남 원도심의 독정천·단대천·대원천이 도시화 과정을 겪으면서 차례로 복개되어 시민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꿈꾸는 마을 : ‘존재의 가상과 디지털 실상’」은 성남의 도시화 과정에서 인구의 유입과 도로 확장의 요구에 따라 복개되어 지면 아래로 감춰진 생활 하천을 ‘아트-트윈(art-twin)’ 기술이 접목된 가상현실로 구현하고, 시민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의 오브젝트(이미지 캐릭터)를 사용하여 복원해 보는 교육 및 미디어 기술 기반의 공공예술 활동이다.
기억의 단절, 잊힌 시공간에 대한 정보를 모아 데이터화한 뒤 예술가와 기술 전문가의 협업을 거쳐 지역의 세 개 하천에 담긴 ‘역사-생태-미래’의 모습을 디지털 가상현실 속에서 이미지 기억지도로 구현함으로써 개발과 자본에 의해 가려진 도시 공간의 허상을 주민의 기억과 예술적 상상력으로 복원했다. 이는 지역의 자연이나 문화적 유산을 데이터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결핍과 비전을 예측할 수 없는 시민의 발상과 기술적 확장력을 통해 사회 공통의 문제의식으로 공유하기 위한 제안이며, 특히 지역 초등학교의 교육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마을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수집하고 온·오프라인을 잇는 환경 개선 활동으로 통합해 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세대 간 소통을 촉진했다.
3부. 「사물의 시간 : ‘예술과 만난 생활 속 오브제들’」
「사물의 시간 : ‘예술과 만난 생활 속 오브제들’」은 김을, 김태헌, 송하나, 이돈순, 이병철, 이부록, 이원호, 이찬주, 정이삭, 조지은, 조형래, 허수빈 등 12인의 시각예술가가 성남 원도심의 주택가 깊숙이 파고들어 지역 생활 하천의 복개로부터 원도심 재개발 등에 이르는 도시의 역사와 변화상을 토대로 다양한 미술적 관점과 협력 작업으로 풀어 간 현장 전시이다. 주거 및 생활 기반의 부침에 따라 기능을 달리하거나 쓸모없이 버려지는 사물로서의 오브제를 창작의 소재 또는 모티브로 삼아 생활 속 오브제에 깃든 시대의 언어를 발굴하고 사물의 시간에 담겨있는 생의 의미와 지속 가능한 공존의 가치를 도심 속 현장 전시로 집약함으로써, 2년간 1-2-3부로 이어 온 아르코 공공예술사업 『‘천川의 마을’_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했다.
지역 자원인 ‘빈집’, 산동네 특유의 전망을 보유한 다가구주택 ‘옥상’, 빈집과 빈집 사이 1.5km에 이르는 ‘골목’ 동선을 예술적 표현의 공유지로 활용하여 생활 및 유휴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고, 환경 변화를 둘러싼 지역의 문제를 공공의 과제로 제시했다. 성남 원도심은 과거 도시 개발의 모순 속에서도 특유의 생명력과 잠재력을 발휘해 온 개인과 집단의 삶이 용광로처럼 녹아 있는 곳이며, 이들과 함께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새겨 놓은 사물들은 그런 인간의 활동과 숨결을 반영하면서 도시의 역사를 증언하는 살아 있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사물의 시간:‘예술과 만난 생활 속 오브제들’ 전시 현장_태평동 2110, 1534, 3021, 865, 4144번지_2023
*[‘천川의 마을’_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진흥기금 지원 아르코 공공예술사업으로 추진하게 되었으며, 2022년 5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총 3부로 이어 간 2년 연속 공공예술 프로젝트입니다.
‘천川의 마을’_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기획: 오픈스페이스 블록스(김은영ㆍ이돈순)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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